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주 대학살 (문단 편집) === [[삼국지톡]] === || [[파일:서주대학살.jpg|width=100%]] || || 오른쪽의 인물은 [[제갈량(삼국지톡)|제갈량]]. '''이 시점에선 겨우 13세.''' || [[삼국지톡]]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서주를 침공한 조조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그냥은 못 간다고 저지른 일로 나온다. 그리고 서주에 붉은 비가 내리는 연출과 함께 창천항로의 묘사처럼 시체로 강을 메운 연출을 보여주었다. 조조의 인기가 높은 작품이지만, [[여백사]] 살해 사건과 이 서주 대학살은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그려냈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군웅들이 아닌 서주의 평범한 백성들의 시각에서 대학살의 참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잔혹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낭야중학교 학생들이 "[[조조(삼국지톡)|어떤 미친 놈]]이 [[사망 플래그|죄 없는 민간인을 죽이겠어?"]][* 후속 화들에서 조조는 서주 백성들을 '''벌레 취급'''하면서 ''''남김없이 몰살하겠다''''고 단언하며, 자기 입으로 ''''서주는 내가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실수도 뭣도 아니고 명백하게 그리할 의지를 가지고 행한 짓이며, 그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도 없고, 서주 백성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며 자신이 그들을 몰살해도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후에 각주로 ''''조조는 죽을 때까지 서주 대학살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어넣어 확인사살을 했다.]하고 마음을 놓고 있다가 화를 당하며, 위의 사진에 나온 '시체가 강을 메운 광경'은 학살 당시 13살의 어린 소년으로 낭야중학교에 월반을 했던 제갈량이 목격한다. 창천항로에서 이 광경을 유관장 삼형제가 목격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제갈량(삼국지톡)|제갈량]]은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며 쓰러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뒤에도 조조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그를 평생토록 증오하게 된다. 형 제갈근도 당시 쓰러진 어린 제갈량을 두고 이 아이는 너무나 영특하여 이 지옥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고 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이는 후에 [[이릉 전투]]를 앞두고 '촉의 적은 위이기 때문에 오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제갈량의 의견에 정당성을 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살이 벌어지기 불과 몇 분 전까지 제갈량은 내심 조조에게 출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주 출신의 인재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난가고서 반 조조 기치를 내세우는 다른 세력에 가게 된 원인이 조조에게 있음을 묘사하는 연출.] 조조군의 병사들도 이런 무자비한 살육으로 인해 심신이 [[PTSD|피폐해진 모습]]으로 묘사되어 [[언데드]] 비스무리한 몰골이 되었다. [[유비(삼국지톡)|유비]]는 이들을 보며 "이들도 한때는 백성이었으니 조조에게 협박이라도 당했나 싶었지만 아니었구나"라며 한탄하는 장면을 통해 조조군 하나하나가 이 학살의 책임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훗날 유비는 서주 전투에서 하후돈이 화살에 꿰뚫린 눈을 씹어먹으며 장수들과 웃으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에 제정신이 아니라며 서주 대학살은 조조의 독선만이 아닌 부하들의 맹목적인 충성심도 함께한 것임을 깨닫는다.] 조조 본인조차도 [[아서스 메네실]]을 연상시키는 피폐한 모습으로 눈에 핏발을 세우고, 학살을 결심하더니 이후로는 광기에 빠져 완전히 망가진 몰골로 등장하고 있다. 전장에서 조조를 다시 만난 [[유비(삼국지톡)|유비]]는, 조조를 향해 '''"한때 당신은 내 영웅이었으나, 지금의 당신은 영웅도 악당도 아닌 괴물이다"'''라고 매서운 비판을 가한다. 여러 모로 '학살의 참혹함을 매우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파트를 기점으로 조조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이 추락했다.[* 본격적인 학살 장면이 묘사되기 전까지는 조조에 대한 동정론도 어느 정도 있었으나, 학살 장면 묘사를 기점으로 몇몇 동정론자들도 전부 돌아섰다.] 이후 조조는 관도대전 편에 들어서야 인기를 일정 수준 회복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한편 이미 서주에서 귀환한 조조가 ''''아직 도겸을 끝장내지 못했으니 다시 한 번 서주를 치겠다''''고 선언하여, 서주 대학살이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음을 몰랐던 독자들은 ''''이 미친 짓을 한 번으로 끝낸 게 아니란 말이냐''''고, 알고 있던 독자들도 ''''1, 2차를 합쳐서 묘사했던 게 아니었단 말이냐''''고 함께 경악했다. 이 일로 [[순욱(삼국지톡)|순욱]]과 [[진궁(삼국지톡)|진궁]]도 조조에게 크게 실망하는데, 그나마 순욱은 자신이 조조를 다시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진궁은 이미 여백사 일가족 살해 사건으로 조조의 본색을 봤던 터라 그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리고 돌아서서 조조를 죽여 없애기로 작정한다. 다만 2차 학살은 1차처럼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조조가 서주성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간략하게 넘어간 뒤 다른 인물에 의해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각주로 학살을 또 벌였다고 적혀있기는 하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 있으니, 이미 1차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만큼 2차는 묘사를 다소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략적으로도 크나큰 실책이라는 것을 상세히 묘사한다. 당장 이 일로 [[진궁(삼국지톡)|진궁]]과 [[장막(삼국지)|장막]]은 조조에게 등을 돌렸고, 연주 전체가 반기를 들어 순식간에 갈 곳이 없어지며, 최대 동맹인 [[원소(삼국지톡)|원소]] 또한 불똥이 튀는 걸 막으려고 조조와 연을 끊는다. 이로써 조조는 근거지도 동맹도 잃어 한때 완전히 끈 떨어진 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기적으로는 순욱과 이때부터 어긋나고 [[제갈량(삼국지톡)|제갈량]], [[노숙(삼국지톡)|노숙]]을 비롯하여 서주 출신의 여러 인재들이 각지로 흩어져서 반 조조 세력에 임관하는 [[나비효과]]를 낳는다. 연의에서 서주 대학살이 이후로는 언급이 안 되는 것과 달리, 삼국지톡에서는 꾸준히 조조의 최대 악행으로 재차 언급이 된다. 여러 모로 '''역대 삼국지 관련 창작물 중 서주 대학살을 사서의 기록에 가깝게 묘사한 작품'''이다. 시즌 6 관도대전 3화에서 진궁이 유비를 조조와 싸우게 하기 위해 그를 부추기려고 '''"조조는 시체들로 서주 강물을 막은 괴물이면서 황제를 구한 영웅으로 이미지 포장 및 세탁을 한다."'''고 욕하며 같이 싸우자고 하지만 그 의도를 알아차린 유비가 단호하게 나오자 한 발 물러난다. 관도대전 24화에서 조조의 부인인 [[정부인|정영옥]]은 아버지를 따라 참전하겠다는 [[조앙(삼국지톡)|조앙]]을 말리면서 ''' "네가 조조의 아들이 맞긴 하구나. 뼈빠지게 키워놨더니 되고 싶은 게 사람 백정이냐?"'''고 다그친다.[* 조조와 정부인의 파국을 묘사한 29화의 덧글 중에는 '조조가 밖에서 학살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잘 해줘서 참았으나 기어이 자기 자식을 병크로 죽게 만든 시점에서 정부인에게 조조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됐다.'는 내용이 공감을 받았다. 이외에도 작중에서 정부인은 조조가 불륜을 저지르던 학살을 저지르던 언젠가 천벌받을 거라며 화가 난다기 보다는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자기에게 막 대하는 것이 허탈하다는 말도 하였다.] 조조가 서주에서 벌인 학살은 가족마저 손사래를 치는 악행임이 꾸준히 묘사되고 있다. [[가후(삼국지톡)|가후]] 역시 조조를 ''''시체로 강을 메우는 색골''''이라고 비판하며 그런 아비에게서 태어난 조앙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놓곤 쏴죽인다~~ 관도대전 30화에서는 [[여포(삼국지톡)|여포]]의 뒤치기로 서주를 잃은 유비를 따라 조조에게 망명한 [[미축(삼국지톡)|미축]]에게 조조가 높은 관직을 주면서 서주의 민심 좀 잘 달래주라고 요구하는 한편 서주 대학살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조 曰 "근데 말입니다? 우리가 큰 그림을 봐야지! '''쬐그만 원한'''은 잊고! 함께 나라를 바로잡아야지 않겠소?" --시체로 강을 메립하다시피 한 게 쬐끄만 원한?-- 애초에 죽는 날까지 서주 대학살에 대해 반성이나 후회가 없던 양반이니 당연한 거지만… 관도대전 37화에서는 [[하후돈(삼국지톡)|하후돈]]이 유비를 구하러 왔다가 왼눈에 화살을 맞자 화살을 뽑아 직접 눈알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이전을 비롯한 조조군 장졸들이 환호하자, 유비는 경악하면서 서주 대학살은 실수도 아닌 조조 개인이 원하여 '''조조군 전체가 기꺼이 그 명령을 따르고 실천한 짓'''임을 깨닫는다. 서주를 빼앗아 점거하던 여포 세력을 토벌한 후 조조가 유비와 함께 서주 백성들을 만나러 나오자 백성들이 환호하여 조조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력자인 이 몸에게 니들이 별 수 있냐.'며 비웃었지만, 정작 서주 백성들은 유비에게만 환호하고 조조는 안중에도 없어서 조조는 어이를 상실한다. 관도대전 60화에서는 아예 말에 앉아있는 조조를 밀치며 낙마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병사들이 칼을 빼들며 조조를 낙마시킨 백성들을 베려고 하자 황급히 말린다. 물론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백성들에게 역으로 린치당해 자기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그런 것이다. 조조는 벌벌 떨면서 병사들에게 "여기는 적진 한복판이란 말이다!"라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이 장면들을 통해 '''서주 백성들은 절대 서주 대학살을 잊지 않았으며, 병사들은 그때처럼 조조가 명령하면 망설이지 않고 다시 서주 백성들을 죽여버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조가 서주는 자신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했던 기억을 잊지않았음을 깨닫는 해당 컷에서 '''"잊겠냐?"'''라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을 정리해주는 짧고 굵은 한마디가 베스트 댓글로 올라갔으며, 다른 베스트 댓글도 "너 같으면 잊겠냐. 강을 시체로 매웠는데?"라거나 "어떻게 잊냐 그걸"이라고 서주 백성들이 자신이 아닌 유비에게 환호를 보내는 걸 이해못하는 조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와중에 유비는 조조의 심리를 눈치채고 황급히 자기는 한 거 없고 조조가 여포로부터 서주를 구했다고 립서비스를 해주나, 얕잡아보던 유비의 무서움을 깨달은 조조가 하비로 가려는 유비를 수도인 허창의 자기 옆집에 잡아놓게 된다. 제갈량이 19세로 성장해 재등장한 76~78화 에피소드에서는 제갈량의 [[PTSD]]가 됐으며, 고향을 작살내놓고 벌은 안 받고 오히려 잘 나가는 조조의 행보에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며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도대전 83화에서는 80~82회에 나온 논영회 에피소드 때 조조가 자신과 유비를 영웅이라고 칭하자, 집에 돌아가면서 서주 대학살은 무슨 밥상에서 물 엎은 것처럼 여기고 있냐며, 영웅은 무슨 얼어죽을 영웅이냐고 속으로 독설을 퍼붓는다. 적벽대전 33화에서 유비가 신야성 백성들을 거둘 때, 원래는 유비가 '피난이 아닌 퇴각이니 따라오면 안 된다. 그대들은 조조의 백성이니 조조가 그대들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리려 했으나 피난민 행렬에 있던 한 노파가 서주대학살 당시의 참상을 기억해내고 '죽는 한이 있어도 따라가겠다'고 외친다. 유비를 따라간 형주 백성들 중에 서주 대학살 생존자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을 반영한 묘사이며, 제갈량도 이들이 어린 시절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유비에게 피난민을 거둘 것을 진언한다. 다만 유비군도 빠듯한 상황이었기에 유비는 이들을 양양성까지만 데려다 주기로 하였으나, 채씨 남매가 자기 백성을 버리고 조조에게 투항하려 하는 바람에 실망한 형주 백성들이 추가로 유비군 행렬에 합세하였고 유비는 이들까지 데리고 남하하기를 결심한다. 다른 삼국지 매체들에서는 대부분 잊혀지는 것과 달리 삼국지톡에서는 잊을 만하면 언급이 되면서 조조의 [[흑역사]]이자 치부임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묘사에 대해 너무 자주 나온다며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다. 허나 유비가 조조에게 실망하고 적대시한 계기가 된 사건이며[* 정사에서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할 때 쓴 [[한중왕표]]에서 조조를 동탁과 형님, 아우 할 학살자라고 깠다. [[손권]]도 조조의 학살과 정벌은 정도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후일 유비 진영에 합류하는 제갈량의 인생을 비틀어버린 사건이며, 오나라에도 당시의 피해자가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에 못해도 적벽대전까지는 지속적으로 잊을 만하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은 본 작품에서 조조의 악행을 부각시키거나 조조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이 나온 것에 대한 반발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논영회조차 조조를 까는 방향으로 재해석해서 유비가 서주 대학살 얘기를 꺼내며 "영웅은 얼어죽을"이라는 식으로 조조를 조롱하자 댓글창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조는 죽을때까지 후회하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인물들은 양심이 찔리긴 한 모양이다. 조조의 사촌인 조홍은 시즌 9 27화에서 조비가 아버지를 까자 술을 부어버리고 “너같은 코찔찔이 해피하게 해주려고 내가, 우리 모두가! 천년만년 저주 받을 인간 백정짓 한줄 아냐고!” 라고 일갈할때 배경으로 흑백의 서주 대학살 현장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